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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후기

    나를 구하시지 않는 하느님, 십자가와 부활로 드러나는 역설적인 진리

    작성자

    now4***

    등록일

    2025-03-11 01:03:55

    조회수

    15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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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무심코 '나를 구하시는 하느님'인 줄 알았다가, 다시 보니 나를 구하시지 "않는" 하느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게 무슨 말이지? 신앙생활을 하며 하느님께서 나를 구하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니...

    당황스러운, 그리고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원작의 제목을 찾아 보았다. The Passion and The Cross. 직역하면 '수난과 십자가'이다. 그렇다, 하느님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구하시지 않았다! 그분이 그렇게 비참하게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도록 내버려 두셨다. 그제야 "나를 구하시지 않는 하느님"이라는 역설적인 제목이 조금은 이해가 가는 것 같았다. 하느님은 수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구하시지 않은 것 같아 보였지만, 사실은 사흘 후에 '부활'이라는, 누구도 생각 못한 방식으로 예수님에게 가장 큰 영광을 주셨다.

    우리 삶에도 고통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갑자기 찾아온다기보다, 늘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고통을 대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얼마 전 몸이 아프고 설상가상으로 다치는 바람에 고생을 했는데, 그런 상황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마음도 힘들었었다. 더 아프고, 더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밖에 해결책이 없는 것인지 궁금했었다. 두 번 연속 유산을 겪었던 것도 그랬다. 왜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하느님은 이런 고통이 나를 찾아오도록 내버려 두셨을까? 또, 왜 우리 아빠는 안타깝게 암 투병을 하다가 하늘나라에 가셨을까? 왜 세상에는 전쟁과 기아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을까? 정답이 없는 '고통'에 대한 질문인지 의문을 쏟아내곤 했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줄 것만 같았다.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에서 그 답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를 알려줄 것 같았다.

    이 책은 십자가 안에 숨겨진 지혜가 무엇인지, 우리의 삶에서 십자가와 부활을 어디에서 발견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도와준다. 특히 수난과 십자가라는 '고통' 속에서 부활의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함을 알려 주기에, 희망의 희년을 지내는 올해 사순 시기에 읽으면 정말 좋은 주제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
    1장 "수난과 겟세마니 동산"에서는 수난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도와준다.

    예수님의 수난이라고 하면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을 극한으로 겪는 것만 떠올랐는데, '극렬한 고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공생활의 대부분을 적극적인 활동가로 사셨던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를 시작하신 순간부터는 당신에게 어떤 일이 행해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수난'의 시기가 시작된다고 이 책은 설명한다.

    '수난'의 시기가 시작된 곳은 겟세마니 '동산'이다. 이 책에서는 동산이 아담과 하와가 살던 곳, 문학적으로는 기쁨과 사랑의 장소라며 예수님께서 '동산'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신 것은 그분의 고뇌가 "사랑하는 이의 고통"이라고 알려 준다. 나는 사실 예수님께서 당신께서 앞으로 겪으실 십자가의 시간이 인간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고 두려워서 그렇게 기도를 하셨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 책에서는 예수님의 고뇌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예수님의 고뇌는 많은 사람이 당신의 희생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좌절감에서 생긴 고뇌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고뇌는 임박한 육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진짜 고통은 사랑으로 가득 찬 사람이 치명적이고 굴욕스러운 방식으로 오해받고 거부당할 때 느끼는 고통입니다. (29쪽)


    *
    2장에서는 수난에 이어 '십자가'가 "인류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정신적 사건"이라고 했던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의 말을 인용하며, 십자가에는 우리 인생의 깊은 비밀이 숨어 있다고 말한다.

    사실 십자가의 비밀은 명료하고 단순합니다. 그 비밀은 바로 모욕과 망가짐, 죽음을 감수하는 완전한 자기희생으로 사랑을 베풀 때만 우리 삶이 최고로 충만해진다는 사실입니다. (79쪽)


    *
    3장과 4장에서는 그 십자가의 비밀을 더 낱낱이 살펴보도록 도와준다.
    먼저 3장 "하느님의 가장 심원한 계시로서의 십자가"에서는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하여 알려 준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성전 휘장이 찢어진 것은, 예수님의 죽음으로써 그동안 휘장으로 가려졌 있던 하느님의 마음과 하느님의 모습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십자가가 보여주는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은 이런 모습이라고 한다.
    - 나약하고 무력한 사랑 - 행할 수 있으나 행하지 않는 권능. 부드러운 방식으로, 무한히 참아 내며, 강제하지 않는, 갓난아기의 모습과 같은 무력한 힘과 사랑
    - 굴욕, 고통, 죽음에서 우리를 '구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일을 겪은 후에 우리를 '구원'하시는 사랑 (하느님은 우리의 고통을 면제해 주지 않으신다!)
    - 버려지고 희생당하고 보잘것없다고 여겨짐으로써, 오히려 더 중요해지고 주춧돌이 되는 역설적인 사랑
    - "우리가 만들어 낸 어떤 지옥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오시어, 얼어붙은 영혼을 녹이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우리를 낙원의 빛과 평화로 데려가"시는 사랑(112쪽)


    *
    다음으로 4장 "구원의 십자가 - 어린양의 피로 씻은 죄"에서는 십자가가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4장은 2천 년 전에 한 사람이 죽음으로써 온 인류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냥 교리로서 당연히 믿어왔던 것인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정말 그랬다, 예수님의 '대속'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스도교 이전 많은 문화권에 있었던 '희생양 예식'에서는 염소 한 마리에 공동체의 악을 덮어씌워 염소를 사막으로 끌고 가 죽게 했다고 한다. 공동체의 죄를 멀리 쫓아버린 것이지, 죄를 '없앤'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방식은 다르다고 한다. 공동체 밖에 내다 버리는 것도 아니고, 아담의 죄나 우리의 죄로 생긴 빚을 대신 갚는 개념도 아니고 "죄를 궁극적으로 변화시키시고 그것을 당신 안으로 가져가 되돌려주지 않는 방식으로 죄를 없애"셨다고 한다(123쪽).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도 이러한 하느님의 어린양이 되어야 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이 하신 죄의 사함은 마치 정수기 필터가 하는 일과 비슷합니다.(123쪽)
    세상의 죄를 없애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미움, 분노, 시기, 옹졸함, 신랄함을 흡수한 후 그것들을 변화시켜 사랑, 자애, 축복, 온화함, 용서로 되돌려줘야 합니다. (125쪽)

    그리고 예수님이 그렇게 끔찍한 모습으로 피를 흘리며 돌아가신 것에 대해서는, 리처드 로어 신부님의 말을 인용하여 설명하였다. 전에는 인간이 신에게 다가가기 위하여 피를 이용하였기에 사람이나 동물 등 희생제물을 바쳤지만, 십자가에서는 신이 인간에게 다가오기 위하여 당신의 피를 흘리셨다. 이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께 다가가기 위해 피를 흘리는 것도,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도 원하지 않으심을 드러내신 것이다.

    "다 이루어졌다." 하는 십자가상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산도를 힘겹게 밀고 나오는 데 성공한 갓난아기의 울음"(130쪽)에 가까운 승리의 외침이라고 이 책에서는 해석하였다. 예수님 마음속의 의심, 두려움, 외로움과의 투쟁이 끝나고 "미움보다 사랑에, 시기보다 인정에, 신랄함보다 상냥함에, 거짓보다 정직함에, 타협보다는 충실함에, 복수보다는 용서에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이 더 낫다고 믿으셨"(131쪽)다는 것이다. 고통과 죄악이 이긴 것 같은 암흑 같은 순간에도, 결국은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의 승리인 것이다.

    또 예수님의 몸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와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에게 생명, 새로운 영양과 정화를 선물한다고 하였다. 이 부분에서 암으로 죽어 가며 완화 치료를 받던 한 남자의 장례식이 남겨진 이들에게 이러한 "피와 물이 흘러나오는 슬픔"이었다는 예화를 제시하였다. 1년여 전, 말기암 환자였던 아빠를 호스피스 병원에서 보내 드렸던 것이 생각나서 책의 이 부분에 오래 머무르게 되었다.
    - 아빠의 죽음은 아주 오묘하게 평화로웠다. 우리 가족은 모두 너무나 슬펐고 정말 많이 울었지만, 아빠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빠가 최대한 아프지 않고 마지막 날들을 보내시기를, 반드시 빛이신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찾으시기를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마지막 며칠은 평소 아픈 걸 잘 참는 아빠가 소리를 지를 정도로 심한 통증에 힘들어하셨는데, 아빠의 두 손을 꼭 잡고 성모송을 바치면 아빠도 힘겹게 "아멘" 하시곤 했다. 정작 나 자신은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 암성 통증이 가져다주는 신체의 고통, 그 순간의 마음을 누구에게도 온전히 털어놓지 못하는 외로움 등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고 뒤늦게 두려움이 찾아왔다. 나도 언젠가는 죽을 텐데, 크게 아프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 그래서 더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을 만큼 갑자기 아팠던 일이나 넘어져서 골절상을 입었던 일들이, 다행히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가 아니었음에도 그렇게 두렵고 싫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것들이 아빠의 고통과 죽음이 내게 남긴 '상처'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죽음이라는 인간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에 대해 미리 생각할 수 있게 해 주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더 깊이 묵상하게 하는 '피와 물' 같은 것이었음을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4장의 내용은 십자가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해 이어진다.
    - 아무것도 하시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침묵 속에 "긴장을 견디며 강인하게 서서, 폭력을 폭력으로 돌려주기를 거부하시며, 심오한 방식으로 저항하고" 계셨던 성모님처럼 온유함, 이해, 용서, 평화, 빛을 드러내라고...
    - 원치 않았지만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키레네사람 시몬처럼, 나의 원의나 계획과 달리 내게 '찾아오는' 십자가를 지라고...
    - 하느님이 몸소 굴욕을 당하셨음을 이해하며, 굴욕을 통해 드러나는 십자가를 발견하라고...
    - 세상의 분열과 우리 각자의 외로움에 대한 해답을, "군중 앞에서 벌거벗겨진 채 무력한 모습으로 매달려 계신"(161쪽) 예수님의 화해의 포옹에서 찾으라고...

    이 부분을 읽으며 특히 내 삶의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묵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십자가'라고 하면 엄청나게 큰 짐이나 어려움을 먼저 찾으려고 하는데, 물론 그런 것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내게 우연히 요구되는 작은 것들도 '십자가'일 수 있음을 알았다.


    *
    5장 "부활-모든 무덤이 열린다"에서는 수난과 십자가 죽음이 거기서 끝나지 않고 부활이라는 해피엔딩(?)을 맞이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고통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명쾌한 답은 없다. 이에 대해 저자 롤하이저 신부님은 책의 처음부터 십자가의 비밀은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라고, 우리의 얕은 지식으로 다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깊이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강조했기에, 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그저 '받아들임'의 영역에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그 해답은 '부활'에 있다고 한다.

    예수님은 침묵 속에서 돌아가셨습니다. ... 하느님의 침묵이 우리를 화나게 합니다. 유다인 학살, 인종 학살, ... 전쟁, ... 지진과 쓰나미, 병에 걸려 혹은 폭력에 희생된 수많은 이들의 죽음, 세상의 불의, 우리 삶 전체를 짓밟아 버리고도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는 악한 자들의 파렴치한 태도를 보고, 하느님은 왜 침묵하시는지 우리는 묻게 됩니다. 하느님은 도대체 어디 계신 걸까요? 하느님의 대답은 무엇일까요?
    하느님의 대답은 부활입니다. ... 부활은 고통 없는 무사태평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악의 영향에서나 죽음의 고통에서 우리를 구해 주시지 않습니다. 악은 자신이 행할 것을 행하며, 일어날 자연재해는 그대로 일어납니다. ... 하느님이 예수님을 죽게 내버려두신 것처럼, 하느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통받고 죽게 내버려두십니다. 하느님은 구조하는 분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마지막 순간, 더 심오하고 영원한 힘으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184~185쪽)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오늘의 우리도 슈퍼히어로와 같은 하느님을 기대한다. 그런데 수난, 십자가, 부활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방식은 그러한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는다. 하느님은 개입하지 않으신다.

    대신 하느님은 고통 자체를 구원해 주시고 죽음을 의롭게 하십니다. 하느님은 악을 힘으로 없애시지 않고, 악한 것 안에서 선한 것을 드러내심으로써 결국에는 남아 있는 모든 것이 선해질 수 있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느님이 세상의 악을 제거하시는 방식입니다.(204쪽)

    하느님은 서두르지 않으신다. 하느님의 방식은 답답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래서 저자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하다"(205쪽)고 말한다.

    수난과 십자가의 무시무시한 이미지들 때문에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이 책의 초반에서 밝혔듯, 사실 수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육체적 고통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십자가에는 그 고통 너머에 온갖 증오와 죄악을 덮으신 예수님의 사랑이 있다. 그분의 사랑과 용서가, 높은 곳에 있는 임금님이나 부잣집 대감님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나약하고 버림받은 모습으로 드러난다는 것은 얼마나 역설적인지. 이 책을 통해 수난과 십자가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며' 침묵과 희망과 인내로 지고 가야 할 나의 십자가가 오히려 조금은 더 가볍게 느껴진다.

    ​하느님은 나의 고통을 면제해 주지 않으신다. 이해는 잘 안 되지만, 그것이 하느님의 방식이고, 그 끝에는 반드시 부활이 있다.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듯한 암흑 속에서도 그것을 믿는 것이 신앙이다.

    사순시기를 보내며 찬찬히 두고두고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이런 깊은 영성을 담은 책을 출판해 주신, 그리고 "수난과 십자가"라는 단순 직역보다 "나를 구하시지 않느 하느님"이라는 멋진 제목을 짓고 제목도 십자가 모양으로 디자인하신 생활성서사에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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