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 가톨릭 사상의 거장,
로마노 과르디니가 평생 묵상한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우리는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 수난과 부활을 익숙하게 읽는다. 그러나 그 모든 말씀과 행동을 통해 우리 앞에 서 계신 ‘그분’이 누구인지 묻기 시작하면 질문은 더욱 깊어진다. 《주님》은 바로 이 질문을 붙들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생애를 깊이 묵상한 로마노 과르디니의 대표작이다.
현대 가톨릭 사상을 대표하는 신학자이자 사상가인 과르디니에게 모든 신학과 사유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다. 특히 그의 그리스도론은 학문적 연구에만 머물지 않고, 주일 강론을 준비하며 성경 말씀을 읽고 삶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그 결실이 바로 《주님》이다. 과르디니는 베를린에서 이어 간 강론을 바탕으로 여러 해에 걸쳐 신약 성경을 세심하게 읽으며 예수님의 모습을 탐구했고, 마침내 1937년 이 책을 출간했다. 그는 자신이 남긴 수많은 저작 가운데 《주님》을 가장 아끼는 저서로 꼽았으며, 이 책은 오늘날까지 그의 주저이자 영성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님》은 이른바 ‘역사적 예수’를 복원하거나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심리적·사회적 원인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과르디니는 복음서의 한 말씀, 한 사건에서 출발해 그 안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인격 전체를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그 인격 안에서 각각의 말씀과 사건이 지닌 의미를 묻는다. 그에게 복음서는 과거의 한 인물에 관한 기록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인격과 마주하는 자리다.
저는 여러분에게 “새로운” 어떤 것도 제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그리스도에 관한 새로운 이해도, 더 나은 그리스도론적인 이론도, 새로운 것도 아닌 영원한 것입니다. 물론 지나가는 우리의 시간이 영원한 것을 마주하면, 그것은 참으로 순수하고, 풍성하며, 습관의 먼지를 털어내 주는 ‘새로움’이 될 것입니다.
― ‘머리말’ 중에서
탄생에서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시간의 끝까지
그리스도의 삶 전체를 따라가는 거대한 묵상의 여정
《주님》은 예수님의 영원한 기원과 강생에서 시작해 공생활과 가르침, 제자들과의 만남,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 수난과 죽음, 부활과 성령, 교회와 재림을 지나 마침내 요한 묵시록이 보여 주는 시간과 영원에까지 나아간다. 모두 일곱 부에 걸쳐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따라가지만, 단순히 시간순으로 사건을 해설하는 전기는 아니다. 과르디니는 각각의 말씀과 사건 앞에 오래 머물며, 그것이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묻는다. 책의 맺음말에서 저자가 직접 되짚듯이 이 여정은 강생과 지상 생활을 넘어 부활과 그리스도교의 역사, 그리고 모든 것을 완성하러 오실 그리스도에게까지 이어진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 일은 단순한 이해보다 ‘만남’에 가깝다. 과르디니는 독자가 이미 잘 안다고 여겨 온 복음의 장면을 다시 바라보게 하고, 익숙한 말씀 속에서 때로 낯설면서도 압도적인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게 한다. 이러한 책의 성격은 저자 후기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과르디니는 《주님》을 ‘학문적인 신학’이 아니라 ‘신앙의 심화’를 위한 책이라고 밝힌다. 과르디니의 영성과 사상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여러 차례 밝힌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주님》을 높이 평가했다.
이번에 선보이는 한국어판은 김형수·신정훈·최대환·허규 신부와 안소근 수녀가 오랜 번역과 윤독을 거쳐 완성했다. 역자들은 과르디니의 저서를 오늘의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의의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의 신학과 사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인격적 내면성을 탐구하고, 교회의 정통적 가르침에 충실하면서도 시대의 징표를 깊이 있게 성찰한 결과이기에 한 시대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으며, 이제 과르디니와 다른 세기를 사는 오늘의 모든 신앙인에게도 신앙과 영성적 삶에 있어 소중한 원천이자 모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저서를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섯 역자는 앞서 2023년 알로이스 그릴마이어 추기경의 《교부들의 그리스도론》을 함께 번역한 바 있으며, 《주님》은 이들이 다시 공동으로 작업한 두 번째 번역서다.
이번 한국어판은 과르디니의 대표작을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한다는 점에서 뜻깊다. 이 책을 통해 오늘의 독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다시 바라보고, 자신의 신앙을 깊이 성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책속에서]


글쓴이 로마노 과르디니
20세기 최고의 가톨릭 신학자로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성장했다. 그는 화학과 경제학을 공부하다 성소를 발견하고 신학을 공부해 1910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교육자, 작가, 강연자로서 가톨릭 신자들의 삶에서 영성의 요소들을 찾아내고 신자들을 육성했으며 대학에서 청년들을 교육하였다. 청년들의 신앙을 길러 주는 가톨릭 청년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묵상, 교육, 문학, 철학, 신학, 예술에 관한 작품을 펴냈으며, 이는 신앙에 참되게 머무르고 회의주의와 파괴적인 의심의 시대에 거룩하게 성장하려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꼭 읽어야 할 책들로 손꼽힌다. 1968년 뮌헨에서 선종했다.
주요 저서로 《로마노 과르디니의 주님의 기도》, 《과르디니와 함께 고백록 읽기》, 《거룩한 표징》, 《우울한 마음의 의미》,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 《미사 제대로 드리기》, 《인간성의 형성》, 《코모 호숫가에서 보낸 편지》, 《예비 기도 학교》 등이 있다.
옮긴이
김형수
부산교구 소속 사제.
독일 뮌헨 예수회 철학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철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2019년부터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상주 교수로서 철학을 가르쳤다. 주로 쿠자누스와 관련된 중세 플라톤주의와 그리스도교 철학의 연관성 및 신비주의를 연구하였으며, 《주님》 번역에 참여하던 중 2024년 11월 선종하였다.
저서로는 『니콜라우스 쿠사누스의 신 인식과 자기 인식』(누멘), 《처음 읽는 중세 철학》(공저, 동녘)이 있고, 역서로는 《신앙과 이성적 통찰》(가톨릭대학교출판부), 《신비주의의 근본 문제》 (가톨릭대학교출판부), 《신의 바라봄》(가톨릭출판사), 《예수의 유산》(분도), 《그리스도교의 인간상》(가톨릭대학교출판부), 《왜 인격들에 대해 말하는가》(공역, 서광사), 《그리스도교 철학: 주체성의 발견》(가톨릭출판사), 《그리스도인의 시편 묵상》(가톨릭대학교출판부), 《바이스마르의 존재론》(가톨릭대학교출판부),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성서와함께), 《우리가 정말로 믿는 것과 이해하는 것에 대하여》(가톨릭대학교출판부), 《교부들의 그리스도론》(공역, 가톨릭출판사), 《과르디니와 함께 고백록 읽기》(가톨릭출판사) 등이 있으며, 그 외 수십 편의 철학 논문이 있다.
신정훈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
1997년 서울 가톨릭대학교, 2001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대학, 2009년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각각 신학 과정을 마쳤다. 2010년 연희동 본당 부주임으로 사목 활동을 했고, 2011년부터 2020년까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상주 교수로서 교의 신학 과목들을 강의했다. 현재는 뮌헨교구로 파견되어 막시밀리안 본당에서 사목 활동을 하고 있다.
역서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신학 주석」 시리즈 (가톨릭대학교출판부), 《그리스도교 신앙》 (공역, 가톨릭출판사), 《안셀름 그륀의 종교란 무엇인가》(가톨릭출판사), 《말씀에 초대합니다》 (가톨릭출판사), 《교부들의 그리스도론》(공역, 가톨릭출판사) 등이 있다.
안소근
성도미니코 선교수녀회 소속 수녀.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교황청 성서 대학에서 성서학을 전공했다. 대전가톨릭대학교와 서울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이사야서》(바오로딸), 《구약종주》(성서와함께), 그리고 역서로는 G. 바르비에로의 《아가》(가톨릭출판사), M. 질베의 《하늘의 지혜》(성서와함께), A. 소진의 《이스라엘 역사》(대전가톨릭대학교출판부), 《로마노 과르디니의 주님의 기도》(가톨릭출판사), 《교부들의 그리스도론》(공역, 가톨릭출판사) 등이 있다.
최대환
의정부교구 소속 사제.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종교 철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뮌헨 예수회 철학대학에서 고대 철학과 윤리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서울대교구 대신학교에서 지성 교육 담당 및 의정부교구 담당으로서 사제를 지망하는 신학생들을 동반하고 있다. 의정부교구 정발산 본당 주임 신부를 역임했고,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여러 해 동안 철학을 강의했으며, 현재 교회 안팎의 다양한 교육 기관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들》(파람북) 등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는 《그리스도교 신앙》(공역, 가톨릭출판사), 《별이 빛난다》(가톨릭출판사), 《교부들의 그리스도론》(공역, 가톨릭출판사) 등이 있다.
허규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
교황청 성서 대학과 뮌헨 루트비히-막시밀리안대학교에서 성서학과 성서 신학을 전공했다. 2013년부터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상주 교수로서 성서 과목들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성서와함께), 《말씀으로 읽는 신약성경》(가톨릭대학교출판부) 등이 있고, 역서로는 《YOUCAT성경》(가톨릭출판사), 《어려운 성경의 해석》(성서와함께), 《교부들의 그리스도론》(공역, 가톨릭출판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