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에 최초로 트라피스트 수도회를 창립한 프랑스 수녀 베르크만스의 생애를 토마스 머튼이 깊이 있게 조명한 장편. 토마스 머튼 연구가인 박재찬 안셀모 신부의 서평으로 토마스 머튼에게 관심 있는 독자가 개괄적으로 그의 생애를 엿볼 수 있게 편집하였다.
베르크만스 수녀가 죽던 해인 1915년에 태어난 Thomas Merton은 자서전 『칠층산』이 출판되던 같은 해(1948년)에 『유배, 영광으로 끝나다』를 펴냈다. 머튼은 한 곳에 머무는 정주 서원이 지니는 의미를 이렇게 묘사한다.
“유배(Exile)는 정주(Stability) 서원을 발하는 시토 회원에게 매우 특별한 날카로운 아픔을 바치도록 요구하는 어떤 것임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한 수도원에만 몸붙여 살며 결코 그곳을 떠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그 땅에 뿌리박는 것이 우리에게는 하나의 덕행이다. 이로부터의 분리는 수족을 절단하는 것과 같다.”
그녀는 “가난, 노동, 유배라는 이 특별한 오솔길”을 걸어갔으며, 하느님 섭리에 맡김으로써 그분께 영광을 드리는 삶에로 들어갔다.
베르크만스 수녀는 새로이 정주 서원을 발하기 바로 며칠 전인 1906년 6월 6일 봉헌문을 작성하였다. 그것을 접어서 나머지 생애 동안 작은 갑 속에 보관하고, 자신의 심장 곁에 두었다. 그것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오, 저로부터 사랑받으시는 소중한 나의 예수님, 저는 흠 없으신 어머니의 인도를 받고, 이제까지 당신의 성심께 드릴 수 있었던 봉헌과 헌납을 모두 새롭게 하며, 또 사랑의 희생 제물로서 당신의 거룩한 자비에 제 자신을 새롭게 드리기 위해 당신께 나왔습니다. 당신께서 불행한 제 조국에서 맛보시는 비통함과 무례함에 대한 보속으로, 저는 당신의 거룩한 사랑의 불꽃 안에 저를 온전히 정화시키고 성화시키며 희생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기원합니다. 오! 저의 선하신 예수님, 당신은 반드시 이 나라 전체로부터 사랑받으시고 참된 프랑스인들 모두로부터 환영받으셔야 합니다. 오, 예수님, 겸손해지고 비참해진 프랑스 정부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당신의 용서를 빌며 나라 전체를 당신의 성심께 봉헌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오, 나의 선하신 예수님, 경멸당하시고 무시당하신 당신 사랑에 희생물이 필요하다면, 탄원하오니, 저를 받아 주소서. 제가 가진 모든 것, 제게 아직 남아 있는 모든 것을 받아 주소서, ”
“오, 나의 예수님, 선택된 제 나라를 위해 당신의 무한한 자비에 탄원하나이다. 당신의 거룩한 마음으로부터 한 줄기 빛이 이 나라에 쏟아지게 하사, 이 나라를 삼키고 있는 오류의 그림자를 흩으시고, 당신 우리 안에 모여든 잃어 버린 모든 양들을 굽어보시고 당신 교회에 위로를 주소서.”
그녀는 이 긴 봉헌문을 잉크로 쓰지 않고 자신의 피로 적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야곱 집안이 이상한 말을 하는 민족을 떠나올 때 ……”(시편 114).
제단 앞에서 수녀들은 기도서를 펴들고 그 엄청나고도 숭고한 단순성으로 시편을 노래한다.
베르크만스 수녀가 창립의 노고로 견고케한 일본 수녀들의 전례 안에는 마음을 움직이며 감동시키는 분위기의 톤이 존재한다. 이러한 음조는 구약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된 것이다. 이 거룩하고 준엄한 선율을 노래하며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이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뛰놂이 일본 열도에 울려퍼진다. 감실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함으로써, 그녀는 점차 자신의 현존과 그곳에 계시는 그분의 현존 사이의 연관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녀는 왜 일본에 있는 이 산중에 있는가? 그분께서 그곳에 계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삶의 목표가 될 때 불가능한 역사가 가능으로 바뀌는 하나의 대서사시를 이 책을 통해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책속에서]
하루가 지나갔다. 쉬는 시간, 3시경, 미사, 6시경, 작업, 9시경, 식사, 그리고 오후가 되었다. 오후 어느 때인지 한 수녀가 수화로 폴리까르프 신부가 고해소에서 그녀를 보고자 한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그녀는 성당으로 급히 달려가서 주님을 경배하며 잠시 무릎을 꿇었다. 고해소에 들어섰을 때 폴리까르프 신부는 말했다. “내 딸아, 오늘 원장 수녀님께서 너에게 큰 희생을 요구하지 않더냐?” “희생이라고요? 저에게요? 아니요, 신부님. 그러나 오늘 아침 집회에서 일본에 갈 자원자들에 관해 이야기 하셨다는 것은 물론 알고 계시지요.” 폴리까르프 신부는 굳이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는 명령조로 돌연히 선고하였는데, 그것은 그녀의 심장을 천둥처럼 내리쳤다. “네가 가거라!” (118페이지).
“나는 십자가의 무게와 하느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희생의 크기를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나의 거룩한 스승의 뜻을 이행하기로 굳게 결심한 상태이다.”(191페이지).
“저를 일본으로 부르심으로써, 저의 사랑하는 정배께서 제게 두셨던 신뢰의 분명한 표징을 제게 주시지 않으셨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게 의지하십니다. 제가 그분의 거룩한 마음 안에 지니고 계신 기대를 결코 실망시켜 드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 저의 기도와 희생으로 이 나라에서는 거의 위로를 받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가난한 선교사들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198페이지).

그리스도의 마음에 머물기까지: 토마스 머튼의 생애, 박재찬(안셀모) 신부
머리말
1. 구속 수도원
2. 리옹에서 보낸 시절
3. 라발 수녀원
4. 수련자
5. 떠나라는 선고
6. 여정
7. 또 다른 고아원
8. 하느님 집안의 일터
9. 닭장
10. 새로운 정주
11. 더 깊은 내면의 성소
12. 마리아의 자녀
13. 문간에서
14. 감사의 찬미
15. 수련장
16. 십자가의 길
17. (계속되는) “십자가의 길”
18. 골고타
맺음말

글쓴이 토마스 머튼
1915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열아홉 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1938년에 가톨릭 신자가 되었으며 1941년에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입회했다. 1948년, 자전적 책 『칠층산』을 펴낸 것을 시작으로 작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침묵 속의 만남』, 『토머스 머튼의 단상』, 『고독 속의 명상』, 『새 명상의 씨』 등 70여 권의 책을 출간하여 20세기 대표적인 가톨릭 영성 작가로 자리 잡았다. 그는 내적 성찰과 관상 전통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동시에 인권, 평화, 비폭력, 종교 간 대화에도 깊이 천착했다. 1968년 태국 방콕에서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칠 때까지 머튼은 수사, 영성 작가, 사회정의 수호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옮긴이 박현정 요나탄 수녀
전남대 독어 교육학과 졸업. 수도원 문서 번역. 칸톨 책임과 쿠키 제조 등 다양한 소임 중에 바쁜 가운데 긴 세월에 걸쳐 영적 독서를 하는 마음으로 번역했다고 한다.
그린이 노성자 쥴리아나 시게코 수녀
베르크만스가 창립한 천사원의 일본인 수녀로서 한국 수정 수녀원의 창립자로 파견되었고 원장직을 역임했다. 베르크만스 수녀에 대해 그녀와 같이 생활한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곤 했다고 한다. “복도를 지나갈 때면 그녀에게서 따뜻한 기운이 퍼져 나왔어요. 그래서 그녀에게 물었더니 미소지으며 답했답니다. ‘저는 자매를 위해 성모송을 바치며 지나가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