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천주교회는 어떻게 복음을 전했을까?
인쇄와 출판의 역사로 다시 읽는 조선 천주교회사
천주교는 어떻게 한국에 들어와 사람들 사이로 퍼져 나갔을까? 한국 교회의 복음화 과정에서 ‘책’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매개체였다. 세계 교회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우리 선조들은 외부의 직접적인 도움 없이 책을 통해 신앙을 접하고 그 안에 담긴 진리를 깨달았다. 중국에서 유입된 한문서학서가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읽히고, 초기 신자들이 이를 우리말로 옮기며 직접 필사해 다른 이들에게 전한 것이다. 그렇게 받아들인 신앙은 다시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로 전해지며 하나의 교회로 성장해 갔다.
1881년 성서 활판소 설립을 기원으로 삼는 가톨릭출판사는 2026년 8월 28일 창립 145주년을 맞는다. 이를 기념해 가톨릭출판사 역사 연구회가 조선 천주교회의 출판과 인쇄 역사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조선 천주교 출판사》를 펴냈다. 이 책은 조선에 한문서학서가 유입된 17세기부터 가톨릭출판사의 기원이 마련되는 19세기까지의 흐름을 따라가며, 천주교 신앙이 책과 인쇄물, 한글, 성물을 통해 어떻게 전파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조선 지식인들의 번역과 필사부터 서적의 생산과 보급에 이르기까지 그 궤적을 짚어 보며, 초기 천주교 서적이 수도 한양을 넘어 지방 공동체로 확산되는 과정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 오늘날 한국 교회의 첫 출판사인 가톨릭출판사로 이어지는 한국 교회 출판 활동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다.
“책은 교회의 창설에만 기여하지 않고, 이 새로운 신앙을 확산시키는 매개체가 되었다. 교회 창설에 기여한 책들은 중국에서 간행된 한문서학서들이었다. 반면에 조선에 천주교 신앙을 확산시킨 힘은 한글로 번역되어 간행된 책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층이나 조선대목구의 책임을 맡은 주교들도 천주교 서적의 출판 문제나 한글의 보급에 대해서 큰 관심을 기울였다.”
─ 조광(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명예 교수)
박해 속에 이어진 인쇄와 출판
책과 성물로 신앙을 전한 사람들
《조선 천주교 출판사》는 책과 성물이 어떠한 경로로 신자들에게 전달되고, 신앙이 전파되었는지를 고찰한다. 먼저 제1부 ‘조선 천주교 출판의 역사’에서는 중국에서 간행된 한문서학서의 조선 유입 과정과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서학서 이해 및 유포 과정을 살펴본다. 교회 창설 이후에는 천주교 서적이 한글로 번역·필사되고 명도회를 통해 보급되는 과정을 추적하며, 이어 1861년 베르뇌 주교의 목판 인쇄소 설립을 시작으로 병인박해 이후 일본과 조선에서 이어진 성서 활판소의 설립과 운영 과정을 되짚어본다. 이를 통해 조선 천주교회의 서적 제작과 보급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나아가 오늘날 가톨릭출판사로 이어지는 출판의 기반이 어떻게 마련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제2부 조선 천주교 출판 공식 언어: 한글’에서는 조선 천주교의 서적 출판 과정에서 한글이 공식 언어로 자리 잡는 흐름을 살펴본다. 초기 신자들과 프랑스 선교사들이 천주교 서적을 한글로 번역하고 제작한 과정도 함께 다룬다. 조선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했던 프랑스 선교사들은 조선어를 배우고 한글을 익히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 노력은 프랑스어와 한글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다리를 놓는 작업으로 이어졌으며, 리델 주교가 편찬한 최초의 조선어 사전 《한불자전》과 최초의 조선어 문법서 《한어문전》의 출판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를 통해 한국 천주교의 복음화 과정이 한국어와 한글을 이해하고 기록하는 작업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부록’에서는 초기 신자들의 신심 생활에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성물의 역사를 살펴본다. 이승훈이 중국에서 가져온 성물부터 성화와 그림 목판, 예수의 화상, 묵주와 십자패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를 통해 초기 조선 천주교회의 신앙생활과 성물의 제작 및 유통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천주교 출판사》는 조선 천주교회의 역사를 신앙과 순교의 역사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책을 만들고 번역하고 베껴 쓰고 유통하던 사람들, 인쇄소를 세우고 운영하던 이들, 그리고 한글로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선교사들의 활동을 통해 조선 천주교회의 또 다른 역사를 보여 준다. 한국 가톨릭 교회 출판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선조들이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진리를 향한 열망을 잃지 않았으며,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이를 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조선 천주교 출판사》는 책을 통한 문서 선교를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책입니다. 한문서학서가 조선에 유입되어 이를 서로 나누고, 한글로 된 천주교 서적을 필사본, 목판본, 활판본으로 만들어 보급하고 유통하는 과정을 꼼꼼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신앙 선조들의 활동을 보다 다각도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신앙의 선조들을 천주교를 믿다가 관원에게 붙잡혀 신앙을 증거하고 목숨을 바친 순교자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파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노력한 분들로 기억하게 해 줍니다.”
─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
[책속에서]
가톨릭출판사 본관 1층에는 묵직한 검은색 인쇄기 한 대가 서 있습니다. 한반도의 변화 속에서 종이 위에 수많은 메시지를 담아냈던 이 인쇄기는 이제 출판사의 역사를 보여 주는 소중한 자료가 되었습니 다. 그 인쇄기를 바라보며 출판의 역사를 정리하고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은 점차 구체적인 과제가 되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필요성을 더욱 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작업에 뛰어들게 되었고, 그 마음은 하나씩 결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 12p. ‘가톨릭출판사 역사 연구회가 맺은 결실’ 중에서
베르뇌 주교는 서적의 대량 생산을 위해 조선대목구 공식 목판 인쇄소 설립을 추진했다. 서적을 대량으로 간행하면 가격을 낮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목판 인쇄소가 필요했던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헌종 4년 무렵에 조선 조정은 천주교 서적이 유입되는 것을 철저히 막았다. 프랑스 선교사들은 천주교 서적 수입에 차질이 생기자 조선 내에서 직접 책을 생산하기로 하고, 인쇄소를 설립하여 대량으로 보급하고자 했다. 특히 신자들에게 필요한 책이 한글로 된 서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선교사들의 결정은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 109p. 제1부 제3장 ‘제3장 조선대목구 목판 인쇄소, 1866년 병인박해까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