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축소가 가능합니다.

닫기

하느님께로 이끄는 무無의 길
“하느님의 아름다우심을 일순간이나마 뵐 수 있다면 천 번이라도 모진 죽음을 달게 받으리라”고 할 만큼 십자가의 성 요한은 하느님의 아름다우심을 관상 생활에서 발견하고 그 아름다우심을 보자 반하여 그분과 하나가 된 성자였다.

「가르멜의 산길」은 시인이며 신비가인 저자가 가르멜 수도회의 초기 계율을 지키는 남녀 수도자들에게 깨우침을 주기 위해 저술한 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故 최민순 신부의 번역으로 1971년에 초판이 발행되었고, 앞서 개정된 「영혼의 성」, 「완덕의 길」과 통일성을 갖춘 판형과 디자인으로 새롭게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이번 개정판 역시 우리말 최초의 번역본이라는 상징성과 가치를 살리기 위해 가능한 한 최민순 신부의 시적이고 유려한 필치를 살리면서, 독자들의 이해를 위하여 이해하기 어렵거나 의미가 모호한 표현은 일부 수정하였다.

본문은 제1권 감각의 능동적 어둔 밤(제1장-15장), 제2권 영성의 능동적 밤(제1장-32장), 제3권 영의 능동적 밤(제1장-45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감각, 영성, 영의 세 단계를 거쳐 끊임없는 자기 비움으로 하느님께 다가가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모든 것을 맛보려면 아무것도 맛보려 하지 마라. 모든 것을 알려면 아무것도 알려 하지 마라. 모든 것을 소유하려면 아무것도 소유하려 하지 마라.’
이처럼 저자는 가장 많이 바라는 때가 가장 많이 자기를 비우는 때, 자기를 완전히 비우고 나면 영묘한 합일 속에서 하느님을 완전히 소유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그럼에도 숱한 사람들이 기억에서 오는 그 아는 맛, 달콤한 맛을 버리기가 아까워서 이 때문에 으뜸가는 소유와 온전한 감미에 이르지 못하니, 가진 바 모든 것을 버리지 않는 자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가르친다. 곧 하느님과 합일을 위한 지름길은 철저한 자기 비움이므로 어두운 밤을 거쳐 정화된 영혼만이 하느님과 깊은 일치를 이루게 됨을 역설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붓을 들게 된 동기는, 이렇듯 어려운 문제를 다룰 만한 능력이 내게 있어서가 아니다. 워낙 이것이 많은 영혼들에게 필요한 만큼, 적이나 서술해 보겠다는 나에게, 주님께서는 반드시 도움을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많은 사람들을 보면, 완덕의 길에 들어섰다가도 우리 주께서 어둔 밤을 거쳐서 당신과의 합일에 도달케 하시려면 그냥 주저앉고 만다. 그런가 하면 자기 자신을 모르거나 산마루까지 이끌어 줄 마땅하고 깨친 길잡이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아주 뜻이 환하고, 가르침이 틀림없이 나타나리라고 나는 믿는다. 여기서 다루는 일들은 단맛과 재미를 보면서 하느님께 나아가는 영성의 사람들을 위해, 보통 도학적인 것이나 풍미로운 무엇이 아니라 발가벗은 영으로 나아갈 마음이 있는 그 누구에게나 있어야 할 튼튼하고 알찬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책속에서]
여기 한 마리의 새가 묶여있다 하자. 가늘거나 굵거나 간에 묶은 줄이 끊어지지 않아 새가 날지 못한다면, 줄이 가늘다 해도 굵은 줄에 묶인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가는 줄은 끊기가 쉽다. 그러나 아무리 쉽다 해도 안 끊으면 못 나는 법이다. 이와 같이 어느 것에 집착을 끊지 않는 영혼은, 비록 덕이 많다 할지라도 하느님과의 합일의 자유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_100쪽

하느님께서는 마치 샘과 같으셔서 사람은 저마다 제 그릇대로 그 물을 푸기 마련인데 때로는 이상한 대롱으로 물을 퍼내게도 하신다. 그러나 하느님 당신이 아닌 그런 것으로 물을 퍼냄은 옳지 못하니,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대로 원하시는 사람에게 그리고 원하시기 때문에 사람의 뜻에 구애됨이 없이 주실 수 있으시다.
_278쪽

성령께서는 차분한 이성이라야 비춰주시고 그 비추심은 차분함을 따라 있는 것, 그리고 이성이 그 차분함을 크게 얻음은 믿음 안에서만 가능하므로 성령께서는 믿음 아닌 딴것으로 이성을 비춰주시지 않는다. 영혼이 믿음으로 닦여져 맑을수록 그만치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많이 지닐수록 그만치 하느님께서 비춰주시고 성령의 은혜를 내리시는 까닭이니, 사랑이야말로 은혜가 오게 하는 길이요 원인이다.
_352쪽

윤리적 보배에서 하느님께 그 기쁨을 향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이 주의할 것은 좋은 일, 단식, 자선, 고행 등의 가치가 그 양이나 질에 있지 않고 그 안에 담겨진 하느님 사랑에 있다는 것이다. 한결 맑고 옹골진 하느님의 사랑을 가지고 할수록 그리고 기쁨이나 낙이나 위로나 칭찬 따위에 도무지 무관심할수록 그만치 일은 가치로운 법이다. 따라서 착한 행실, 좋은 일에 있기 쉬운 기쁨이나 위로나 맛이나 재미에 마음을 두지 말고, 그런 것을 통하여 하느님을 섬기고 스스로를 맑게 닦아 하느님께 그 기쁨을 집중시켜야 한다.
_494쪽

독자에게

요지

노래

머리말

제1권 감각의 능동적 어둔 밤

제2권 영성의 능동적 밤(이성) 

제3권 영의 능동적 밤(기억과 의지) 


글쓴이 십자가의 성 요한
아빌라의 데레사와 함께 스페인 신비신학의 거장인 십자가의 성 요한은 1542년 가난한 귀족 가정에서 태어났다. 1563년 가르멜 수도원에 입회하여 살라망카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1567년 사제가 되었다. 그는 하느님께 깊이 몰입하면서 더욱 엄격한 수도회에 입회하려 했으나 아빌라 데레사에게 설득되어 데레사의 개혁을 가르멜 남자 수도회에 소개하고 두루엘로의 첫 개혁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그 뒤 가르멜회 대학에서 교수로 있었으나 1577년 개혁을 원하지 않던 수도원장에 의해 9개월 동안이나 투옥 생활을 하게 되었다. 후에 요한이 칼바비오로 떠남으로써 가르멜 수도회는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와 이전의 가르멜회로 완전히 분리되었다. 요한의 신비적 영성은 많은 수도자에게 관상의 길로 들어서는 등불이 되고 있다. 1726년 교황 베네딕토 13세에 의해 시성되었고, 199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스페인어권의 모든 시인詩人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옮긴이 최민순
1912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1935년 사제품을 받았고, 1975년 선종했다. 신학생 시절부터 문재文才에 뛰어났으며, 가톨릭 내 잡지와 신문에 글을 기고하면서 언론을 통한 선교에 힘썼다. 가톨릭공용어위원회 위원, 가톨릭대학 신학부 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주의 기도’, ‘대영광송’ 등의 기도문 번역과 여러 편의 성가 노랫말을 짓기도 했다. 사제 생활 중 20여 년을 신학교에서 후배를 양성한 영성신학자로서, 글과 시, 영성 강론을 통하여 한국교회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지은 책에 수필집 「생명의 곡」과 시집 「님」 · 「밤」 등이 있고, 옮긴 책에 「고백록」 · 「완덕의 길」 · 「영혼의 성」 · 「가르멜의 산길」 · 「어둔 밤」 외 다수가 있다. 1974년 로마 가르멜회 총본부로부터 명예 회원 표창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