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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학적 통찰과 사목적 방향성

쭐레너는 세상의 위기를 바로잡지 못한 채, 자기 사명을 수행하지 못하고 “영적 에너지와 창조적 역동성”을 잃어버린 것으로 불신을 받기도 하는 교회에 대해, 이를 비판하기보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한 신학적 통찰과 사목적 방향성을 따라, “하느님의 구원 행위에 응답하며 하나의 봉사를 수행하는 공동체”로 교회의 정체성을 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쭐래너는 교회의 여러 문헌 및 신학자와 교황의 메시지들, 무엇보다도 복음의 메시지를 활용해 교회가 처한 위기를 직면하고, 그에 대응하기 위한 해답을 찾는 과정으로 안내하는 질문들을 제시한다. 그렇게 제시한 질문들에 대해 숙고와 통찰의 과정을 거친 이 책의 본문은 독자들에게 사유의 불꽃을 일으켜 영감을 북돋아 주는 보석과도 같은 글이 되어 준다. 


이 글들은 단순한 단상이 아니라, 신학을 포함한 여러 학문 분야 간의 경계에서 생겨난 대화와 경청, 통찰의 산물이다. 이 미니어처들은 삶과 현실, 교회와 세상, 하느님과 인간이라는 복합적인 주제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비추며, 독자 안에 새로운 질문과 해석의 지평을 열어 줄 것이다. - 머리말


1장 열정의 하느님, 

하느님에 대한 현대 사회의 인식 

현대 사회에서 ‘종교적’이라는 말은 어쩌면 부정적인 뉘앙스를 더 많이 내포하고 있는 단어일는지도 모르겠다. 중세 천년을 지난 후 유럽인들에게 하느님의 ‘상像’은 생과 사의 모든 것을 결정하시는 분에서 도움이 되거나 그렇지 않은 존재로까지 급격하게 변화해 왔다. 반면에 ‘영성’이라는 말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유럽의 경우 여전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자신을 ‘종교적’이지는 않지만, ‘영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오늘날 무신론자임을 자처하는 이들 중에서도 종교적 배경을 지닌 일상과 축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즉, 여전히 종교는 우리들 가까이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또한 하느님을 잊어버린 세상에 채워진 고통들을 살펴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신론자든, 실용주의자든, 혹은 신앙을 지닌 이든, 어떠한 삶의 양식이라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신의 삶에 하느님을 얼마나 가까이 두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신앙적 삶은 나 자신에게, 그리고 이 세상 전체에 긍정적 이로움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나를 두려움 없는 연대의 길로 해방시키며, 타자와의 사랑을 통한 인간다움으로 이끈다. 나는 확신한다. 사랑하는 연대야말로 인간다움으로 나아가는 왕도이다. 생의 마지막에서 하느님께서 삶을 평가하실 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일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는가?” - 1장 열정의 하느님


2장 무언가주의 세상, 

흔들리는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열정 

‘무언가주의자’는 하느님을 익명적이고 비인격적인 ‘무언가’로 인식하는 이들에 대해 토마시 할리크Tomáš Halík가 정의한 개념이다. 이들은 하느님을 세상의 창조주로 보지만, 역사에는 개입하지 않는 존재로 인식한다. 즉, 세상의 의미와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무언가’를 하느님으로 보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들은 하느님은 더 이상 필요치 않으며, 하느님 없는 세계가 더 인간적이고 도덕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쭐레너는 근대 이후 유럽의 역사를 자유와 정의, 공존과 평화를 위한 ‘투쟁의 역사’로 규정한다. 특히 공존과 평화는 ‘두려움’을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는 일부 모리배들에게서 세상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가치이다. 또한 전쟁이 일상이 되어 버린 오늘날,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된 이 세상의 자유와 정의, 공존과 평화를 지킬 수 있는 분은 여전히 하느님이시며, 그분을 믿는 이들과 그들의 모임인 교회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평화를 위한 이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그 선두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있었다. 이는 교회가 스스로를 하느님의 평화 운동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느님을 평화의 하느님으로 증언하며, ‘마지막 날들’에 주님께서 시온산 위에 평화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고 예언한다. … 그리스도인들이 평화를 위해 일어서지 않는다면,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무엇을 위해 헌신해야 한단 말인가? - 2장 무언가주의 세상


3장 앗숨Adsum 교회, 

교회를 위한 조금은 쓴 약 

교회는 예수님 사건을 기억 속에 간직하기 위한 모임에서 시작됐다. 성경과 전례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기억하고자 한 이들의 모임은 곧 제도로 이어져 발전해 왔다. 만약 교회가 ‘제도화’되지 않았더라면, 예수님 사건은 역사 속 수많은 사건들처럼 순간의 이벤트처럼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68혁명’ 이후, 제도는 타도와 전복의 대상이 되었고, 이 거센 파도에 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쭐레너는 그러나 탈제도화의 결과와 제도의 순기능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며, 울리히 벡과 위르겐 하버마스를 인용하여 제도의 목적은 본질적으로 자유를 위한 장을 마련하는 것임을 천명한다. 오늘날 교회는 일반 대중들이나 개혁론자들의 “예수는 OK, 교회는 NO”라는 슬로건처럼 교회 제도에 대한 불신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예수님 사건의 기원에 충실하면서도 시대에 맞는 교회의 제도적 형태를 위해 복음을 근거로 언제나 시대와 문화와 상호 작용해 왔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경적 사회 형태뿐 아니라 현대적 핵심 가치들, 즉 자유(종교의 자유), 평등(세례에 근거한 평등), 형제애(교황과 결합된 주교단의 단체성)를 수용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포한 세계 교회의 시노드 여정은 성직주의적·군주주의적·절대주의적 교회 형태를 극복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동시에 이는 문화의 다양성에 부응하는 탈중앙화를 통해 중앙 집권적 획일주의에서 비롯된 불안을 해소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3장 앗숨Adsum 교회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열정, 

그 열정의 선행 과제인 세상의 변화 

쭐레너의 하느님과 세상 그리고 교회에 관한 목소리는 교회의 개혁을 위한 진보적 변화를 촉구하는 부분에서 절정을 맞이한다. 그는 신앙을 심신의 안락을 위한 개인적인 활동으로 보는 대중의 인식에 부합해 취향에 맞는 하느님상像을 추구하려는 현대인의 경향에 치중하는 교회를 반성하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낼 줄 아는 교회의 모습을 촉구한다. 

  그가 교회에 요구하는 진보적인 주장은 몹시 급진적이고 개혁적인 주제들처럼 보인다. 그러나 탈성직주의와 여성 성직자의 임명 문제, 평신도의 역할 확대 등에 대한 주장은 놀라우면서도 합리적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교회가 오늘날의 현실에 발맞추면서도 교회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기 위함이다. 절대적 영향력을 누렸던 과거의 교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는 어느새 선택의 영역이 되어 버린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진정으로 신앙에 헌신하는 이들이 있다. 결정적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진한 교회의 시노드화는 쭐레너의 주장에 힘을 실어 준다. 


오늘날 그리스도교 교회가 겪는 것은 몰락이 아니다. 오히려 전환, 곧 과도기적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시대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교회 형태는 저물고, 그 대신 새로운 형태의 교회가 태동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탈리아 주교들에게 전한 말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우리는 변화의 시대를 사는 게 아니라, 한 시대의 변화를 겪는 중입니다.” - 3장 앗숨Adsum 교회


[책속에서]

세상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이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끊임없이 존재하게 하시며, 격동의 역사를 거쳐 완성으로 이끄신다. 위대한 여성 신학자 도로테 죌레Dorothee Sölle의 말처럼, 이 모든 일은 열정적인 ‘사랑으로부터ex amore’ 비롯된 것이다.  

- 머리말, 7쪽


이 책은 수년에 걸쳐 내 안에 머물렀던 수많은 질문들을 담고 있다. 그 질문들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삶의 깊은 지층에서부터 천천히 스며 올라온 존재론적 물음들이며, 이에 대한 응답은 이 책에서 완결된 형태로 제시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이 제공하는 것은 단편적 암시와 파편적 응답들이다.  

- 머리말, 15쪽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도 생활은 열심히 수행하지만 세상과 피조물의 보전을 위한 구체적 실천에는 무관심한 신자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들을 경건하지만 무관심한 자들, 비정치적인 사람들이라고 명명하면서, 신앙이 실천적 책임을 결여할 때 발생하는 왜곡을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2020년)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25–37)를 해설하며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조명했다.  

- 1장 열정의 하느님, 63쪽


절제되지 않은 인간의 갈망은 시인들과 예언자들을 통하여 인간의 마음이 궁극적으로 절제되지 않은 하느님을 향하고 있음을 증언한다. 이 사실은,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을 상기시킨다. “우리의 마음은 하느님 안에서 안식을 얻기 전까지는 쉼이 없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또한 역설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느님의 마음 역시 인간의 마음 안에서 쉼을 얻기 전까지는 편치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의 춤이시며,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 1장 열정의 하느님, 54-55쪽








머리말

7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열정

8 휘청이는 세상

9 교회 내부로부터의 붕괴

12 공의회의 논리

15 끝없는 질문들


1장 / 열정의 하느님

21 당신도 영적인 사람인가요?

28 그분께 기도도 바치시나요?

30 하느님의 이미지로 채워진 화랑

32 하느님 이미지의 다양화

37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하느님

40 하느님 없는 세상, 고통을 잊은 세상?

42 끊임없는 비판과 쇄신

44 신앙은 이성을 초월한다

48 나는 범재신론자Panentheist다

51 한정된 시간 속의 끝없는 갈망

58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

두려움 이해하기 / 두려움 속에서 살아남기 / 원초적 두려움과 원죄 / 종교 색채를 지닌 두려움

78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

82 가톨릭-모든 이를 위한 구원

85 남은 것은 도덕뿐


2장 / 무언가주의 세상

93 우리는 흔들리는 세상에 살고 있다

103 자유와 정의를 위한 투쟁 속에서의 복음 

자유를 위한 투쟁 / 정의를 위한 투쟁 / 공존을 위한 투쟁 / 평화를 위한 투쟁

114 하나의 정체성-다양한 근거들

118 지금 여기, 하느님 나라

122 제자리를 찾아서

126 하느님 나라

129 민주화와 시노드화

131 신정 정치

132 위계적이나 비권위적인

135 민주주의로부터 배우는 교회

137 교회로부터 배우는 민주주의 

하늘의 선물들


3장 / 앗숨Adsum 교회

142 교회는 평판보다 더 진실하다

147 사건-제도-사회 형태

152 제도의 그늘과 빛

154 제도와 사회 형태

155 예수는 OK, 교회는 NO

159 벤치마킹의 함정

푸념과 한탄 / 개혁의 좌절감 / 내면의 사직 / 웰빙 추구 vs 소명에 대한 응답 / 몰락이 아니라 전환이다!

174 탈성직주의화

권력과 성직주의 / 영적 / 사제성 / 소명 / 은사 /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 / 영적 식별 / 복음적 권고 / 사목적 봉사와 세상 안에서의 사명 / 전례 

216 결코, 절대로

헛된 논쟁 종결 시도 / 여성 부제직? / 원치 않는 장기 체제? / 논리의 전환 / 고대적 상징 세계 / 표상 / 자유로운 소명 시장의 종언 / 소명을 향한 새로운 길

236 충만한 삶은 어디에


243 주註 



글쓴이 파울 M. 쭐레너Paul Michael Zulehner

오스트리아 빈 대교구 소속의 가톨릭 사제이다. 현대 유럽을 대표하는 사목 신학자이자 종교 사회학자로, 2009년 오스트리아 공화국 은공 훈장을 수훈했고, 2015년 독일 에르푸르트 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2025년 사목 신학과 종교 사회학, 교회 사유의 쇄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잘츠부르크 신학상을 수상했다. 빈 대학교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1774년 설립) 사목 신학 석좌 교수(1984-2008년), 신학부 학장(2000-2007년)을 역임했으며, 약 15년간 유럽 주교회의 연합회(CCEE) 의장단의 신학 고문으로 활동했다. 

종교 사회학과 사목 신학을 접목한 연구 활동을 통해 교회의 현대적 쇄신과 시노달리타스를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으며, 『휘청이는 세상에 대한 희망Hoffnung für eine taumelnde Welt』 등 50권이 넘는 저서를 출간했다. 


옮긴이 김기철

독일 뤼네부르크 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프랑크푸르트 한인 성당에서 활동 중이며, 옮긴 책으로는 안셀름 그륀 신부의 『인생이라는 등산길에서』(생활성서사, 2021)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