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법조인, 신앙인 김동국
변호사로서 무죄 변론에 앞장섰던 김동국 변호사 유고집 「사랑으로 법을 살다」가 나왔다. 서른 네 살에 암이 발병해 18년간 투병하다 2015년 쉰 두 살에 선종한 그는 암 앞에서 절망해 주저앉기보다 변호사로서 소명에 충실하면서 일상을 꾸려나갔다. 그리고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며 암과 싸워갔다. 이 모든 것엔 그의 탄탄한 신앙이 바탕이 됐다.
생전의 그는 자신의 무죄 변론을 책으로 내고 싶어 했다. 이에 가족들은 고인이 SNS와 공책에 남긴 글, 휴대폰의 메모를 모으고 지인들의 회고 글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그리고 이 기록의 흐름은 고인의 무죄 변론의 궤를 따라간다고 고인의 선배 허두영 씨는 말했다. 그리고 그 무죄 변론의 궤는 김 변호사가 생전에 했던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무죄 변론은 판사의 언어로, 신앙고백은 하느님의 언어로.’
한편, 고인과 고인에 대한 지인들의 기록을 모아 2015년에 한 출판사에서 책이 나왔으나 바오로딸에서 기록을 재구성하여 이번에 다시 나왔다.
김동국 약전 무죄 변론은 판사의 언어로 신앙고백은 하느님의 언어로
1부 평범한 일상이 그립다
“Don’t be afraid, God bless you”
2004년 간 이식 후 처음 전이를 알고서 한 메모
용기를 주시도록 기도하며
항암치료
삶의 단상들
감기 유감
작심 30일
삶의 소중함과 치열함을 보여준 친구
2부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을 함께 나누며
관습헌법
대법원에서 대부분 무죄 주장이 배척된 사건의 양형 변론
진실이 거짓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사법 신뢰 회복의 길
다시 겨울, 또 다른 겨울까지
연민
부끄러움에 대하여
하나의 현실, 서로 다른 인식을 넘어서
법조인들의 언행과 품위
시간의 상대성-2014년을 보내며
몸에 맞는 옷이 아름답다
새로운 리더십을 꿈꾸며
사실심의 강화와 지원이 필요하다
절제의 미덕을 기대하며
천국에 계신 김동국 변호사님께
사람을 살리는 진정한 변호인
3부 가장 소중한 단어, 꿈
꿈
일상의 소중함
새해에도
「적절한 균형」
미안한 하루
가장 소중한 것을 덮어두고서
새해 결심과 실행할 것들
이 시대는 위기인가?
공공도서관을 살려야
자살통계, 충격적인 사실에 둔감한 사회
민주주의의 원리
비판의 자유
권력
진실의 힘
스스로 생각하며 사는 일이 필요한 시대
올바른 대안을 만들려면
건전한 시민의 목표
맥락을 놓치기 쉬운 사회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다시 생각한다
세종대왕으로부터 배우는 소통의 방법
조용하지만 깊이 흐르는 강물처럼
4부 죽음의 고통에서 건져주신 하느님
내가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
내가 좋아하는 성가
마음의 평화와 신앙의 목적
성탄절을 보내면서
이식수술 5주년 회고
사순 시기를 보내면서
파스카 성야 미사에 다녀와서
내가 좋아하는 기도, 봉헌기도
대림 시기를 맞이하면서
시편으로 바치는 기도
은총을 청하며
추석 미사에서
사람을 사랑했던 분
5부 자랑스러운 내 아들, 내 딸
딸의 행복한 학교생활
아들의 시험성적
주일미사 길에서
성탄 축하
어제, 오늘, 내일
인권 모의재판과 결혼기념일
친구들이 고맙다
사랑하는 딸에게
행복한 기억의 힘
여행의 설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일상의 기적을 살아온 내 친구 세례자요한
글쓴이 김동국
1964년 출생.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어머니를 따라 일찍이 성당에 다니기 시작함. 학창시절, 늘 손은 책을 펼쳤고 발은 항상 서점이나 도서관을 향했으며 장충고등학교에서 맹렬하게 펼친 도서부 활동은 법조인으로 지내면서 독서토론회로 이어졌다. 1982년부터 서울대학교 법과대학과 대학원에 다니면서 서울대 가톨릭학생회 활동을 이끌었으며 사법고시에 합격 1992년 인천을 시작으로 전주, 광주, 서울에서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의 판사로 봉직했다. 서른다섯 살의 나이로 간암 판정을 받고 잦은 수술로 직무수행이 어려워지자 2002년 서울고등법원의 판사를 사임하고 법무법인 로텍을 설립, 대표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화려한 사건보다 억울한 판결의 희생자를 찾아다녔다. 또한 대한변협신문에 칼럼 “쓴소리 바른 소리”에 연재하며 인권과 정의에 대해 법조계의 성찰을 촉구하기도 했다.
2007년 간암이 폐로 전이되었고 18년간 수술과 색 전술 그리고 항암치료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지만 신앙으로 버티는 가운데 마지막 날 주님께서 불러 가실 때 나도 다 이루었다고 기도하게 해달라던 그는 2015년 갑작스레 쓰러져 11월 15일 그토록 가까이 가고 싶어하던 하느님께로 달려갔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교육위원회 교육위원, 예수회 기쁨나눔재단 이사, 한국인권재단 이사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