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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나360°웰빙지수’23개국 중 꼴찌 ‘OECD 행복지수’38개국 중 29위

왜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경제 후진국보다 낮은 것일까?

이 책은 위기의 한국 사회를 조목조목 진단하고, 미래 한국의 새로운 이정표를 ‘놀이’에서 찾고 있다


한국 사회는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과 학습시간 속에서 극도의 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성적지상주의’ ‘학벌주의’ ‘출세주의’ ‘입시지옥’ ‘취업지옥’ ‘승자독식’ ‘피로사회’ ‘과로사회’ ‘일중독’ ‘낮은 출산율’ ‘높은 자살률’ ‘앵그리angry 사회’ ‘헬조선’ 등. 이 모두는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표현들이자,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요컨대 과잉경쟁이 부른 우리 사회의 참사慘事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경쟁만이 ‘성장의 동력’인양 되뇌어 왔지만 진정한 성장은 개인과 조직의 발전을 위한 상호 협력과 공유의 가치를 알게 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우리는 행복을 쫓아 경쟁하지만, <국제기구 행복지수> 조사를 보면 한국의 순위는 비슷한 경제 수준의 국가들에 비해서도 한참 뒤처져 있다. 그야말로 “성장과 행복의 역설”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이제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삶의 좌표’를 다시금 점검해보아야 할 시점이다.


“그렇게 놀기만 해서, 도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니...” 인간은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인간이다! 놀이는 창조적 영감의 원천이다.

과거에 놀이는 게으른 인간들이나 철없는 아이들이 하는 쓸데없는 짓이자 시간낭비라고 비난받거나 평가 절하되었다. 그러한 까닭에 학문적 분석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 놀이의 중요성을 간파한 독일 미학자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는 “인간은 인간인 한에서만 놀이하며, 또한 놀이하는 한에서만 온전한 인간이다”라고 정의했고, 그는 놀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을 규정하는 기준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놀이를 통해 미를 추구하고 이를 통해 예술을 형성하며, 이 놀이가 인간 본성의 회복과 사회변혁을 이끄는 추동력이라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 문화이론가인 요한 하위징아J. Huizinga가 인간을 라틴어로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인간”Man the Player이라고 정의하면서 놀이를 인간 삶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규정했다. 놀이는 실상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특성을 지닌다. 오늘날 인간의 삶에서 결코 분리할 수 없는 놀이는 인간 ‘상상력’과 ‘창조력’의 원천이며, 인간은 이 놀이를 통해 창의성과 협력, 그리고 공유의 정신을 배운다. 놀이에 대한 새로운 통찰과 각성은 이내 신학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심미적 직관과 놀이를 통한 자유와 해방체험을 강조하는 ‘놀이신학’의 부상이 그것이다.


그리스도교는 놀이의 종교이다. ‘놀이하는 하느님’Deus Ludens의 형상을 따라 ‘놀이하는 인간’이 창조되었다

저명한 개신교 신학자인 독일의 위르겐 몰트만은 “왜 하느님께서는 세계를 창조하셨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면서 놀이를 ‘창조론’創造論과 연관시켜 하느님께서 스스로 그것을 보고 즐기시기 위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요컨대 창조는 태초에 하느님께서 선한 의지로 스스로 행하신 온전한 놀이 행위였다. 하느님을 닮은 인간 또한 놀이를 통해 하느님의 놀이인 창조에 응답한다. 인간의 놀이에는 하느님의 놀이에서 발견되는 자발성, 즐거움, 창조성, 생명력 등이 있다. 따라서 몰트만은 놀이야말로 궁극적 인간성에 대한 창의적인 희망이며 즐거움에 대한 표현이고 ‘자유인 선인’이라고 규정했다. 놀이와 종교는 양쪽 다 우리를 해방과 기쁨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 절대적인 자유와 기쁨은 결국 신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거룩하고 초자연적인 감각이다. 놀이는 그 경지를 인간에게 미리 맛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놀이를 통해 피조물이 획득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완전성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적 노력의 최고 목표인 신성에 바쳐진 놀이는 바로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놀이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놀이’를 許하라!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고, 세상을 배우고 이해하며, 친구들과 의미 있는 관계 맺기를 배우면서 전인적 인간으로 성장해간다. 어린 시절 놀이는 평생을 위한 기초 공사다. 가장 창의적인 행위는 놀이에서 나오고, 그 놀이는 창의력을 키운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환경은 맘껏 뛰어놀 수 있는 교정과 각종 놀이나 체육기구가 풍부하게 구비된 학교다. 이러한 놀이는 <아이의 행복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2016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조사에 따르면, 아이들의 운동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초등학생들의 자아존중감과 생활만족도는 높아졌다. 반면, 미디어 이용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아존중감과 학업성적은 떨어지고 우울감, 공격성, 스트레스 정도는 높아졌다. 어려서 잘 놀지 못한 어린이는 커서 성인이 되도 놀이를 잘 모른다. 놀이를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휴식과 갱신의 기회를 놓쳐버리게 되면 후일 어른이 되어서도 결국 일에만 골몰하거나 일중독에 걸려 자신의 삶뿐 아니라 가족의 삶까지도 황폐화시키게 된다.


‘좋은 인성’은 인생 최대의 자산이다. 한국 교육의 새로운 이정표는 ‘다시 인간’이어야 한다

인성이 최고의 ‘스펙’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인성은 대학입시 사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대기업 신입사원 선발의 주요한 기준이 되었다. 기업의 승진 기준 역시 경쟁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내에서 타인들과 화합과 협력을 잘 이끌어내는 사람으로 바뀐 지 오래다. 명문대 졸업장만 있으면 성공하리라는 그간의 기대와는 달리 이미 사회는 실력보다 바른 인성을 가진 사람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다가오는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이제 창의력과 소통능력, 그리고 따뜻한 인성은 없어선 안 될 필수적인 자질이자 능력이다. 그러나 인성교육은 논리나 공식 또는 암기로 성취되지 않는다. 주위로부터 감동이 있고 감화가 되면 마치 물이 땅속으로 스미듯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바로 ‘공감교육’이다. 공감교육은 상대의 감성을 읽는 능력, 즉 공감능력을 배우는 과정이다. 세계적인 경제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 즉 “공감하는 인간”이 다가올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의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적자생존과 부의 양극화로 치닫는 현행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공유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추천사_9
머리말_12


제1부 피로사회 대한민국_19
       성적지상주의_22 
       공부에 중독된 사회_23 
       허울뿐인 교육강국_35
       학벌주의와 수저계급론_49
       폭력과 희생양 메커니즘_62   
       성과지상주의_77
       일중독증workaholic_79
       피로사회증후군_89                   
       우울한 사회의 종착역은 “헬조선”_98
       자살에 대한 사회적 성찰_103
       경쟁은 과연 성장의 동력일까?_114
       우리는 왜 점점 행복과 멀어질까?_124


 제2부 놀이와 쉼에 대한 학문적 성찰_147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_151
       놀이와 문화_157
       놀이의 타락과 문명의 퇴행_162
       놀이하는 하느님Deus Ludens_168
       하느님 체험과 미학적 구원_169
       놀이하는 신성Divinitas Ludens_176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놀이_201
       놀이와 노동_209
       안식일과 쉼의 신비_217 
       타 종교에서 본 놀이에 대한 성찰_227


제3부 잘 노는 아이가 성공한다_245
       잘 노는 아이가 성공한다_247
       놀이는 창의력의 보고寶庫_248
       놀이는 최고의 공부다_251
       자연은 신이 주신 최고의 놀이터_260
       생명애호사상_261
       스마트폰에 영혼을 빼앗긴 아이들_265 
       자연은 최고의 강의실_271


제4부 미래는 창조와 공유의 시대다_281
       불확실성 시대의 인재양성_287
       21세기의 화두는 ‘재미’다_293
       창의성은 다양성과 공유에서 나온다_306  
       깊은 심심함에서 창의력이 나온다_309
       창의적 교육을 위한 대안 모색_315
       좋은 인성은 인생 최대의 자산이다_325 
       인성교육의 실패는 사회를 지옥으로 만든다_325
       인간은 공감의 동물Homo Empathicus_332
       마음속의 거울, 공감능력_337
       공동체와 인성교육_345


맺으면서: 기로에 선 한국, 교육만이 미래다_353

참고문헌_363


글쓴이 문영석

약력 가톨릭대학교 신학부, 캐나다 University of Ottawa, 학사(B.Th.), St. Paul University, 신학사(S.T.B.), University of St. Michael’s College(TST), 신학석사(Th.M.), University of Toronto에서 문학석사(M.A.)와 동서 수도원제도를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비교 분석하여 종교학박사(Ph.D.) 학위를 취득하였다.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객원교수,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신비주의, 종교학, 생태신학 등을 강의하였으며 강남대학교 국제대학 학장으로서 국내 최초로 캐나다학을 개설하여 한국과 캐나다 간 학술 및 문화교류의 업무도 담당해왔다. 한국캐나다학회 회장, 토머스머튼학회 회장, 신학과사상학회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2016년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한 후 캐나다와 한국을 오가며 종신부제(Permanent Deacon)로서 여러 가지 학술 활동과 사목에 종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