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처럼 녹아서 사랑이 되고 싶은 맑은 영혼의 기도
낙동강 변 명례 성지에서 수년 간 성지를 일구며, 수행하듯 기도와 묵상으로 영혼을 가꾸는 이제민 신부의 명상 에세이 『사랑이 언덕을 감싸 안으니』가 출간되었다. 누룩 장수이며 소금 장수였던 순교 복자 신석복 마르코의 생가 터에서 그의 삶을 묵상하면서, 소금처럼 세상을 위해 자신을 녹이고 사그라지게 하고 싶은 저자의 강렬한 소망과 하느님에 대한 열렬한 그리움과 사랑이 기도가 되어 진하게 풍겨 나오는 책이다.
자연과 인간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만나고 싶어 하면서, 삶의 순간 순간을 되새겨보고 성찰하며 부끄러워하는 저자의 간절함이 모든 페이지에서 먹먹하리만치 전달되어 온다. ‘언제, 어떻게 당신을 만날 수 있는지’를 수도 없이 물으며 ‘고요 속으로 사라지기’를 바라는 그의 기도는 곧 마음 안에 갇혀서 미처 말이 되지 못한 우리들의 기도이다.
사람들이 고요에서 멀어지는 사이 고요도 사람에게서 멀어집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고요, 침묵, 밤, 달과 별, 비움, 광야, 관조 등은 가까운 언어가 아니다. 하늘, 숨, 바람, 빛, 언덕, 쉼, 안식 등도 우리에게는 이미 영혼의 언어가 아니다. 저자는 이 단어들의 영롱한 의미를 되찾아 내어 다시 본래의 맑은 의미로 우리에게 돌려주며 그 의미에 잠기게 한다.
창조의 순간, 고요와 침묵과 안식을 이 책 『사랑이 언덕을 감싸 안으니』는 계속 노래한다. 침묵과 고요를 잃는 것은 자신을 잃는 것이고, 이웃을 잃는 것이며 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식을 깨뜨리는 언어는 혼돈입니다. 언어의 고향은 안식입니다.”
“당신의 창조를 살기 위하여 저는 당신의 침묵과 안식을 배워야 합니다.”(본문 중에서)
언제 저는 당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요?
『사랑이 언덕을 감싸 안으니』는 매일의 삶을 통찰하며 바치는 섬세한 기도이며 고백이다. 어제 미처 보지 못한 노란 꽃에서 자신의 무심함을, 그 무심함에도 상관없이 아름다운 피조물을 바라보며 자신의 하루를 그분께 털어 내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그 얼굴을 찾는다. 언덕을 오른 사람들, 순롓길에 스친 사람들, 함께 미사를 드리는 사람들,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 안에 그분이 현존하심을 알면서도 만남을 통해 자신을 나누지 못했음을 아파하며 괴로워한다.
세상의 모든 소리에서 그분의 음성을, 만물의 움직임에서 그분의 흔적을 쫓는 이 책은 기도의 본질이 되는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말씀 안에 살아계시며 사람들 안에서 움직이시는 주님을 찾고 따르려는 저자와 함께 하루 한 단어, 하루 한 꼭지만큼 그분을 더 가까이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배기현 주교, 이해인 수녀, 정호승 시인의 추천사
‘녹는 소금의 영성’을 강조하며 순교 성지 명례 언덕에서 스스로 예언자적 언덕이 되어 가는 한 사제의 절절한 고백록은 감동을 줍니다.
낙동강처럼 출렁이는 마음의 기도, 들녘의 노을처럼 스며드는 하느님의 현존, 이웃을 차별 없이 챙기는 어진 마음과 겸손한 노력이 갈피마다 읽혀지는 저자의 글들은 지상의 순례객인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차분한 목소리로 들려줍니다.
평범한 일상의 언덕을 오르는 꾸준한 인내와 믿음 그리고 이타적인 사랑이 실은 비범한 보물이고 은총임을 새롭게 깨우쳐 줍니다. _ 이해인 (수녀, 시인)
투철한 수행자의 일기처럼 정직하고 맑은 자기 응시와 성찰의 기록입니다. 읽는 이조차 신부님 영혼의 ‘부끄러움’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 윤동주 시편들을 읽음 못지않습니다. “영원히 머물게 해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조용히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다는 말씀이 깊고 맑고 오래가는 메아리로 남습니다. 빼어난 신학자 신부님이 명례 언덕에 머무시며 필경 당신이 좋아하시던 클라우스 성인과 같은 은수자가 되셨나 봅니다. 이렇게 존재 자체로 복음을 가르치고 증언해 주셔서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_ 배기현 (주교, 마산교구장)
여기 낙동강 강변에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작은 성전을 지어 사는 한 신부의 영혼의 속삭임이 있다. 누구든지 이 성전의 마룻바닥에 고요히 무릎을 꿇으면 성찰의 기도시를 읽을 수 있고 침묵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제 무엇을 위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내 삶에 진정한 행복과 평화가 있었던가.’ 하는 명제에 갈 길을 잃었을 때, 이제민 신부님이 지으신 이 말씀의 성전에 잠시 들르시라.
먼 산이 더욱 가까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새소리와 눈부신 강물의 물결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람이 자연으로서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결국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랑의 성전을 짓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_ 정호승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