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방에 머무시오. 독방이 모든 것을 가르쳐 줄 것이오." - 압바 모세
시노에스 압바가 늙고 병들었을 때 그의 제자가 주거지 가까이 옮기자고 제안했다. 원로가 대답했다. "하지만 여자가 없는 곳으로 가자!" 그러자 제자가 말했다. "여자 없는 곳이 사막 말고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스도교가 막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던 4세기 말, 도시를 버리고 사막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고독으로 이끈 것은 하느님을 온전히 체험하고 싶은 갈망이었다. 그들은 열정에 넘쳤고 별나게 살았다. 고행, 침묵, 기도 그리고 관상이 이 은수자들의 생활양식이었다. 하느님을 만나는 데는 고독만으로 부족했다. 그들은 유혹을 거슬러 사자처럼 싸웠다. 그들을 보고 누구는 미쳤다고 수군거렸고 또 누구는 성인처럼 공경했다. 이 고독한 영웅들이 바로 그리스도교 수도승 생활의 창시자들이다. 그들은 독특한 생활 방식과 지혜로운 가르침으로 오래오래 기억되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막교부들은 주로 이집트 독수수도승들이다.
뤼시앵 레뇨 신부가 "진귀한 우표나 희귀한 물건을 모으듯이" 도처에 흩어져 있는 사막교부들의 자료를 찾아 모은 지 어언 40년 드디어 이 신비스럽고 탁원한 사람들의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일상을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일화와 금언은 그리스어, 이집트어, 시리아어, 아랍어, 아르메니아어, 그루지야어, 심지어 슬라브어로 출판되었거나 많은 필사본 선집들에 산재되어 있었다. 레뇨 신부의 오랜 노고로 이제 우리는 사막교부들의 개성 뚜렷하고 독창적인 삶을 한눈에 읽게 되었다. 그는 교부들의 일반적 관례와 관습을 소개하면서도 각 인물의 개별적 특성을 존중해 마지않았다. 사막교부들은 하나의 사안을 두고도 다르게 이야기했고 다양한 사건 속에서도 공통된 본질을 통찰했다. 그래서 우리는 수천 가지 금언과 일화에 담긴 그들의 행위와 말과 생각을 하나하나씩 음미할 수밖에 없다. 그것들의 정수가 이 책에 들어 있다.
그들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 왜 사막으로 들어갔는지, 어떤 집에서 무슨 옷을 입고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술은 마셨는지, 낮에는 뭘 했고 밤에는 뭘 했는지, 돈은 벌었는지, 뭐라고 기도했는지, 묵상은 어떻게 했는지, 외로움은 어떻게 견뎠는지, 놀고 싶은 건 어떻게 참았으며 여자 생각은 어떻게 떨쳤는지, 혹시 동성에게 끌리지는 않았는지, 사막에서 관연 건강했는지, 아플 땐 어떻게 했는지, 원로나 수도승 형제들과는 잘 지냈는지, 우리처럼 주5일제 같은 것도 있었는지, 늘 착하게만 살았는지, 화날 때와 싸울 때는 없었는지, 기적도 행했는지, 천사와 악령도 보았는지, 사막에서 동물을 만나면 어떻게 했는지, 어떤 모습으로 죽었고 장례는 어떻게 치렀는지... 한마디로, 사막교부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이 책에 다 있다. 사막교부, 이렇게 살았다. 한번 따라해 보고 싶은 분은 압바 모세의 말을 들을 것: "독방에 머무르시오. 독방이 모든 것을 가르쳐 줄 것이오."
레뇨 신부의 고증에서 역사적 사실과 전설을 구분하려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교훈이 없다고 소소한 내용들을 의아하게 여길 필요도 없다. 제자와 지지자들의 상상에서 나온 것들은 고려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가스통 파리Gaston Paris가 주장하듯, 그럼에도 "참된 그리스도교 서사시는 사막교부들과 더불어 시작한다"
글쓴이 뤼시앵 레뇨(Lucien Regnault)
프랑스 솔렘 수도원의 수도승으로, 1941년에 수련을 받고 솔렘의 도서관장과 교부학 교수로 일하다가,
훗날 수련장과 원장직도 수행했다. 40년 넘게 고대 동방 수도승들의 삶과 작품과 영성을 연구해온 그는,
이를 바탕으로 사막교부들의 금언에 대한 충실하고 비평적인 모음집을 출간했다.
옮긴이 허성석
1988년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입회하여 1995년에 사제가 되었다. 대구 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영성신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1998~2001년 로마 성 안셀모 대학교 수도승 연구소(Monastic Theology)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국 뉴멕시코 주에 있는 성 베네딕도 사막 수도원(The Monastery of Christ in the Desert)에서 수도생활에 정진하고 있다.